여덟 번째다!
2008년 무찌마무사와 함께 멋모르고 떠난 한여름의 낚시여행 이후,
2010년과 15년, 두 번을 걸렀다.
올해로 십 년째가 된다.
'야한 조행기'라 이른 까닭은 지난 조행기에 몇 번 설명한 적이 있다.
다시 소개하면...
야하다는 것은 보통 섹시하다는 느낌을 떠올리지만...
한자로 들 "野'자다.
들과 같다. 곧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자연은 불편하지만 진실되고, 꾸밈이 없어도 가장 아름답다.
자연은 야하다!
때문에 나는 자연을 좋아하고 동경한다.
인위를 배제하고, 최소한의 편리를 추구한다. 자연과 동화되고 싶다.
이것이 '야한 조행기'라 이른 까닭이다.
'야한 조행기'는 한여름 장마철에 4박 이상을 홀로 치르는 일종의 의식이 되었다.
퍼붓는 장맛비와 작열하는 태양에 몸을 맡긴다.
목적지는 지리산을 휘감아 도는 섬진강이다.
근처 광주의 '5.18 광장'과 남원의 '만인의총'도 들러볼 예정이다.
계획은 적당히 세운다.
닥칠 현실은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이었기에...
일산에서 출발이다!
서해대교를 지난다.
오랜만에 보는 서해대교의 모습이다.
목적지까지는 아직 250킬로 이상 남았다.
갑자기 대나무 같은 비가 쏟아진다.
가뭄에 목이 타던 때가 엊그제인데...
곳곳에 장대 같은 폭우로 피해가 많다.
'自然不仁' 자연은 인자하지 않다.
섬진강에 거의 다 왔는데...
백로가 내 차 앞을 유유히 걸어간다.
녀석의 터무니없는 여유는 눈앞의 먹잇감 때문이었다.
무척 보고 싶었다.
사대강 사업으로 남녘의 아름다운 강들이 피고름을 머금어 갈 때...
아득한 지리산을 스쳐 그나마 자연스럽게 흘러든, 홀로 남은 강이다.
나를 나무란다!
내 사진 실력으론 이 벅찬 감동을 전할 길이 없다.
그저 셔터를 누를 뿐...
주위를 둘러싼 지리산 자락이 섬진강을 더욱 신비롭게 한다.
높지 않은 둑에는 어도가 있다.
蟾津江 섬진강의 '섬'은 두꺼비 섬자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에 왜구들이 강 하구에 침입했을 때...
광양 땅 섬거에 살던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떼 지어 몰려와 울부짖자,
이에 놀란 왜구가 물러갔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섬진강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리 믿을만하지는 않지만, 두꺼비를 보긴 보았다.
건너편에 낚시꾼이 있다.
자그마한 좌대도 보인다.
인간이 節制 절제를 할 줄 안다면...
적당히 먹을 줄 알아 건강을 유지할 것이고,
주변에 욕설과 싸움이 줄어들 것이고,
세상에 부정부패가 많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자연은 인간과 더불어 풍요로울 수 있을 것이다.
섬진강이 그 증거이다.
더 이상 강을 파헤쳐선 안 된다!
- 무울 생각!
'곡성'
다음날 아침에 이곳을 지나 산책을 하던 중 알았다.
영화를 촬영했던 곳이다.
물살이 무척 세 보인다.
내가 齋 재를 지은 곳은...
순창과 적성을 굽이쳐 흘러든 섬진강과 남원을 돌아 흘러든 요천의 두물머리 건너편이다.
작열하는 태양을 막아준, 산허리마다 걸린 비구름이 고맙다.
광활하지만 포근하고 오히려 선선하기까지 하다.
좌대를 펴는 지금, 설렌다.
그러나...
평온해 보이는 물 표면과는 다른 물속을 어찌 헤아리지 못했단 말인가?
곧 해가 질 시간이다.
대를 드리우기 전에 오늘 한 끼를 준비한다.
호주산 와규 스테이크다.
이미 집에서 소금과 후추로 간하고 코코넛 오일을 둘렀다.
자연과 맞서기 위해...
한 끼라도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이 내 소신이다.
혼자 먹기 쑥스러워 한 점 권해 드린다.
황홀한 풍경에 둘러싸여 마시는 한 잔 술은 신선주가 된다.
그런데...
아무리 수심을 깊게 잡아도...
찌가 보이지 않는다.
물은 소리 없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들어보면 찌는 이미 한참을 떠내려가 있다.
낚시 불가다.
아까 본, 건너편 파라솔 쪽은 역시 현지의 고수들이었다.
이 장마통에 물살이 없는 곳을 선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가 내린다.
텐트도 아직 치지 않았는데...
아쉬움을 접는다.
점점 거세지는 비는 텐트를 뚫을 기세다.
.
.
.
섬진강에 들기 전, 광주 '518 광장'을 찾았으나...
월요일은 휴관이란다.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겉모습만 본다면...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구 전남도청사는 회칠을 다시 했고, 현판은 사라졌다.
깨끗하게 닦고 치웠다는 느낌이다.
주변은 무슨 기념이니 하면서 문화공원처럼 새롭게 꾸며져 있다.
역사의 현장을 훼손하지 말라고 알리는 현수막이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사진에 담기에도 민망하다.
나는 새로 세운 건물들을 보려 이곳에 오지 않았다.
여기서 무엇을 보고 배우란 말인가?
그런다고 내 삶 속에서 벌어진 이 비극적인 동족상잔이 어찌 잊힐 수 있단 말인가?
불과 37년 전에 벌어진 역사의 현장인데...
우리는 역사의 현장 보전에 대한 인식이 너무도 부족하다.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쉽게 훼손하고 왜곡까지 서슴지 않는다.
일제의 잔재를 걷어내기는커녕, 스스로 그 짓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수백 년, 수천 년 전의 유적들은 어떤가?
나는 완도 옆의 작은 섬 장도가 청해진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
지난 야한 조행기 7탄에 자세히 썼다.
장도엔 허위가 가득 찼다.
이제 우리는 왜곡을 철저히 걷어내고 진짜 역사를 되찾아야 한다.
청해진은 산동성과 강소성에 이르는, 즉 청도와 상해를 아우르는 동아시아 해상왕국이었다는 사실이다.
- 무울 생각!
장도에 대해 더 말하면...
1959년 태풍 사라호가 우리나라를 덮친다.
그때 장도에 내 종아리만 한 목책이 여럿 발견되고...
탄소 연대측정 결과, 8~9세기 장보고가 활동한 시기와 겹친다고 밝혀진다.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1982년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술재단이 조사를 실시한다.
그리고 조그마한 장도에...
2001년부터 9년까지 장보고 유적지 청해진 복원작업이라며 공사가 이루어진다.
그것이 지금 우리들이 보고 있는 것이다.
2017년 4월 19일자 조선일보 기사에 의하면...
해상왕 장보고가 만든? 전남 완도 청해진에는 사당이 있다.
장보고가 아닌 송징이라는 장군을 천년 동안 모신 사당이다.
그런데 30년도 되지 않은 최근에 그 주신을 송징에서 장보고로 바꾸었다. 아니, 바꾸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천년 동안 섬겨왔던 장군님 대신에 다른 장군님을 주신으로 모시라니,
천년 동안 불러온 샘물 이름도 '큰샘'에서 '장군샘'으로 바꾸라니,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8호인 완도 장좌리 당제와 당굿 기능보유자이며...
사당 지킴이 상쇠 강양대 (71세)씨가 기자에게 이리 묻는 것이다.
"장좌리 사람들 의문을 풀어 주소. 우리 송징 장군은 어이 되었는지. 우리는 장보고 몰라."
송징 장군은...
고려 시대 진도에 기지를 만든 삼별초가 완도에 파견한 장군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튿날 아침!
낚시는 포기하고 산책을 한다.
지금처럼 장마철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광일 것이다.
한 장만 찍어도 될 것을 저절로 여러 번 셔터가 눌려진다. 정리만 힘들 텐데도...
건너편 파라솔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낚시를 가는 이유가 오직 붕어를 낚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오래 낚시를 했다 한들 그 사람은 완전 초보다.
물고기를 잡는 일은 낚시의 일부,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낚시는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기 전에는 찾고 있는 줄도 몰랐던 자연의 풍요로움을 발견하는 일이다.
- 폴 퀸네트, 무울 편집!
여전히 둑을 넘는 물살은 거칠다.
이 다리를 지나 오른쪽 위에 涵虛亭 함허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해석하면 '비움에 젖는다'라는 뜻이다.
고상한 듯 보이지만 옛날 지역 유지들의 놀이터일 뿐이다.
팽나무!
느티나무처럼 장수하는 老巨樹 노거수에 속한다.
커다란 팽나무가 있는 땅은 비옥해서 예부터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보기에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보기완 다르다.
오른쪽 아래를 자세히 보면, 낚싯대 하나가 휘어져 있다.
그 더 오른쪽으로 줄에 걸려 있는 부유물이 보인다.
그나마 한 대 어렵사리 세웠는데...
산책하는 동안 휩쓸려 버리고 말았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남원으로 향한다.
아무리 흐리고 비가 내려도 복 중에 날씨는 덥다.
남원에서 목욕을 하고...
주변에 미리 검색했던 소류지를 찾아 나선다.
마곡 저수지!
수위가 낮고 진입이 어렵다.
원당제는 아예 출입금지?다.
차를 세우고 걸어서 올라간다.
길은 곧 사라지고 그 끝에는 묘지만 덩그러니 있다. 물을 찾을 수 없다.
그나마 사전에 탐색을 했던 두 개의 소류지였는데...
네비에 뜨는 주변의 소류지를 보고 무작정 핸들을 돌린다.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차가 진입할 수 없는 곳까지 들어가 보았지만...
녹조가 마치 기름띠처럼 가득 차 있다.
그리도 아쉬웠나 보다.
다시 찾은 섬진강이다.
건너편 왼쪽 위가 어제 재를 지었던 석축이다.
물살이 덜할 거 같아 건너편으로 넘어왔지만...
저 앞에 수풀을 헤치고 질퍽한 땅을 건너야 한다.
다시 휴대폰으로 지리산 주변을 검색한다.
진안에 반월제가 야단법석이다.
소문이 난 곳은 막상 자리가 없거나 소란스럽기 마련일 텐데...
마이산이 보이고...
폭우로 인해 도로 곳곳이 보수공사 중이다.
네비에는 이곳이 반월제로 나오는데...
나의 현대 모비스 네비는 업데이트를 한 지가 몇 년이 지났다는 걸 잊고 산다.
마이산!
24mm의 어설픈 광각으로 한 컷!
2017년 2월 17일에 무찌마와 함께 올랐던 기억이 새록하다.
바다가 융기해 만들어진 독특한 산이라는데...
진안 지방이 예전에 바다였다는 말인가?
주변의 지세로 봐선 전혀 아니다.
다른 연유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100대 명산 중에 하나이며 외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일명 타포니 현상으로 산허리에 움푹 파인 흔적들이 있다.
암과 수, 두 마이봉 사이에 능소화가 아름다운 탑사가 있다.
200mm 줌으로 당겨 한 컷!
200mm 줌으로 찍은 사진을 집에 와서 크롭 한다.
포강저수지는...
낚시한 흔적이 거의 없는 환상적인 포인트!
낚시를 하려면...
정글을 헤치고 낫으로 베고 바닥을 다지고 정말 군인정신으로 들이대야 한다.
그래서...
찜이다!
다음에 꼭 온다.
그 아래 여기가 맞다. 포강저수지는 반월방죽이었다.
차를 딱하고 댈 수 있는 명당이다.
이제 한숨을 돌린다.
마이산을 바라보며...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재를 짓는다.
두 번째 저녁을 준비한다.
돼지고기 목살과 라면이다.
조촐하지만 꿀맛이다.
낚시는 불확실한 일이다.
낚시는 도박과 비슷하지만, 로또같이 멍청한 짓은 아니다.
로또가 사람을 속이기 쉬운 것은 지식이나 재능, 기술, 훈련, 타이밍 같은 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낚시는 그런 눈먼 도박이 아니다.
낚시에서 이기려면 두 가지를 갖춰야 한다.
두뇌와 기술이다. 그리고 운을 걸고 부딪치는 것이다.
로또보다 훨씬 매력적이지 않은가?
- 폴 퀸네트, 무울 편집!
왼쪽부터 28, 34, 40, 38, 32, 26 칸으로 여섯 대를 드리운다.
수심은 약 2미터 전후...
미끼는 글루텐을 묻힌 옥수수다.
베스가 있다.
도라지!
태양은 마지막 열기를 토해내며...
마이산 자락을 타고 넘는다.
수박밭이다.
저수지를 둘러본다.
해가 졌어도 열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어디서 본듯한 좌대.
수중전이다.
물속 수초를 넘겨 찌를 세운다.
대물이 있다면 바로 여기다. 반월제의 소문이 사실일 거라는 확신을 준다.
완벽한 세팅 모습이다.
저 낚시꾼은 왼손잡이가 틀림없다.
뜰채가 오른쪽에 있다.
해가 저물고 캐미를 준비하는 꾼들!
졸졸 흐르는 작은 고랑이지만...
맑고 시원한 물을 수건에 적셔 턱하고 걸치면 살 것 같다.
밤하늘의 보석들을 하나씩 따다 심는다.
다만 낮에 보았던 녹조가 어른거리는데...
나와 거의 같이 도착한 현지꾼이 오른쪽에서...
44에서 60까지의 장대를 거리낌 없이 드리웠다.
절로 감탄사가 새어 나온다. 설사 붕어를 잡지 못하더라도...
.
.
.
남원하면 춘향이가 먼저 생각날 것이다.
그러나...
남원은 정유재란 초기 1597년 추석에 발발한 전투에서
6만 명의 왜구를 맞아 처절한 전투를 벌인 끝에 가장 많은 조선 관군과 양민이 학살된 곳이다.
만 명이 넘게 몰살했으며 베인 코가 300개 가까이다.
아이든 여자든 노인이든 모두 죽였다.
그리고 왜구들은 승리의 전과를 확인하기 위해 코를 베었다.
그 베인 조선인의 코들은 지금도 일본 교토에 코무덤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남원에 있는 만인의총을 기리는 사당에는...
충렬사라 쓰여있고...
사당 뒤에 1973년에 조성된 '만인의총' 즉 무덤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만인의총에 만인은 없었다.
남원 만인의총 앞 사당 충렬사는 만인이 아니라 전투 수뇌부 8인을 위한 사당이었다.
사당 안에는 '만인의총' 위패가 있다.
이 위패도 1973년 같이 마련된 것이다.
지금 만인의총은 묻힌 이 하나 없는 허묘다.
충렬사에서 8인을 위해 제사를 지내오던 유림 측은 위패 위치와 제사 방법을 놓고 당국과 갈등을 빚다가...
1981년 별도로 충렬사를 만들었다.
2017년 5월 현재 남원에는 충렬사가 두 개 있다.
만인의 충렬사 그리고 유림의 충렬사.
남원에 전직 교사이자 사학자인 한병옥 (74세)은 말한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만인을 함께 모신 적이 없었다.
한마음 한뜻으로 싸우다 함께 죽은 영령들인데...
왕봉산으로 이장할 때 아무리 옛 의총 터를 파들어가도 석탄재에 연탄재밖에 나오지 않았다.
결국 뼛조각 하나 수습하지 못하고 흙만 퍼서 이장했다.
백골이 진토가 되기에는 세월이 너무 짧다.
옛 만인의총 터 깊은 곳에 의인들이 굉장히 많이, 아주 넓은 면적으로 잠들어 있다.
여전히 420년째 옛 물구덩이에 처박혀 있다는 말이다."
- 2017년 5월 3일 조선일보 참조.
밖에는 기념비가 떡 버티고 있다.
가소로운 일이다.
글을 쓰다 보니 의문점이 하나 생겼다.
'정유재란'
지금까지 아무 의심 없이 그저 '란'이라 불렀다.
그런데...
보통 국가와 국가의 전쟁을 '란'이라 부르진 않는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세계대전 등으로 일컫는다.
'란'이란 한 나라 안에서 반정부 세력이 일으킨 무장봉기나 저항을 말한다.
예를 들면...
홍경래의 란, 삼별초의 란, 홍건적의 란 등이다.
그렇다면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등은 무엇인가?
조선이라는 한 나라 안에서 일으킨 무장봉기란 말인가?
왜구나 청이 모두 조선이었단 말인가?
아니면 조선이 그냥 허세를 부린 것인가?
따져볼 일이다.
- 무울 생각!
이튿날 아침!
오른쪽 현지꾼의 장대도 무소식이다.
아침 일찍 철수를 한다. 이제 가을에나 와야 할 거 같다며...
아침 아홉 시가 지날 무렵인데 반월제는 끓는다.
젊은 루어꾼이 실례를 전한다.
흔쾌히 자리를 내준다.
장르가 다를 뿐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걸렸다.
나보다 훨씬 효율이 높다.
월척 포함, 4수 이상 손맛을 본다. 물론 베스다.
떠나기 싫어하는 눈치다.
도랑에 시원한 물을 흠뻑 적신 수건을 둘러쓰고...
조행기에 전혀 얼굴을 비친 적이 없는 내가 한 컷 찍는다.
더위를 먹었나 보다.
뜨거운 한낮!
호랑나비!
게아재비!
외래해충인 갈색날개매미충의 약충!
번데기를 거치지 않는 곤충의 유충을 약충이라 한단다.
영어로는 'nymph 님프'.
님프라 하면 왠지 선해 보이지만...
나무를 고사시키는 아주 나쁜 해충이다.
감나무는 물론 주변의 모든 나무에 붙어있다.
심각할 정도로 많다.
2010년 이후 전남 순창 구례 등지에서 퍼져 지금은 전국에 나타나고 있다.
보면 바로 즉사시키길...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이놈은 벼룩처럼 튄다.
이 뜨거운 날에 전신주를 새로 박고 있다.
으름 덩굴!
내 오른쪽에 새로운 꾼이 들어왔다.
두 번째 손님을 받는다.
숨을 쉬기도 벅찬 이 뜨거운 날에 열심히 대를 드리운다.
누가 돈을 준다 해도 못할 짓일 텐데...
나는 일찌감치 그늘 아래서 더위를 피한다.
사흘 째 저녁을 차린다.
첫날과 같다.
모두 자리가 비어 있다.
밤을 기다린다.
세 번째 밤이 다가오고...
하늘에서 떨어진 보석들은 더욱 빛을 발하는데...
정분이 나지 않는 낯선 밤이다.
.
.
.
正生 정생
29살
문간방에서 홀로 생활하던 시절
그 춥고 외딴 방에 놀러 온
작은 친구들...
뚫린 창호지 구멍으로
폴짝 뛰어들어온
개구리...
겨울이면 따뜻한 아랫목에 들어와
같이 잠들던 생쥐...
"자다 보면 발가락을 깨물기도 하고
옷 속을 비집고 겨드랑이까지 파고들어 오기도 했다.
처음 몇 번은 놀라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지내다 보니 정이 들어
아예 발치에다 먹을 것을 놓고 기다렸다.
개구리든 생쥐든 메뚜기든 굼벵이든
같은 햇빛 아래 같은 공기와 물을 마시며
고통도 슬픔도 겪으면서
살다 죽는 게 아닌가."
솔직하게 어두운 진실을 동화에 담아낸 이 시대 최고의 작가!
2007년 5월 17일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 지식채널 e 참조.
이튿날 아침!
조과는 없다.
야한 조행을 하면서 이렇게 빈작인 경우는 처음이다.
구름에 가린 태양마저 후끈거린다.
물총새!
농약 때문에 개체수가 무척 줄어...
요즘은 보기 힘든 여름 철새다.
아무래도 밤에 철수를 해야겠다.
나흘 째 마지막 식사는 점심으로 한다.
밤에 철수하려면 술은 빼고...
찜통 더위가 오히려 반가운듯한 가족이 나들이를 나왔다.
물총새가 내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이놈은 수컷이다.
부리 위아래가 모두 검은색이다.
암컷은 아랫부리가 붉은색이다.
9월이 되면 동남아시아로 떠난다.
여기서 두꺼비를 만난다.
섬진강으로 쳐들어오던 왜구를 물리친 의병이다.
실제로 보면 내 손바닥보다 훨씬 크다.
마지막 노을이 뜨겁다.
이렇게 힘든 조행을 하면서도...
나는 벌써 새로운 탈출을 모색하고 있다.
내가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곳을 홀로 찾아가는 짜릿한 경험을 이제는 놓을 수 없다.
야한 조행은 늘 새로운 곳을 찾아갈 것이다.
붕어가 잡힐지는 부딪혀 봐야 아는 것이다.
철수를 결정한다.
밤에도 이리 더운데...
아침에 덮칠 삼복더위를 더 이상 견딜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금 시각이 오후 10시다.
집에 도착하면 다음날 새벽 2시가 넘을 것이다.
사박오일이 아니고 삼박오일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나 자신을 격려하고 싶다.
비록 붕어 한 마리 못 잡고...
녹조 때문이라 핑계를 댔지만...
멋진 경험을 했다고...
내년에 다시 보자고...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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