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를 혼자 했다.
아내는 성당 ‘헌화회’ 송년 모임이 있어 저녁을 나가서 먹는다 한다.
호프집에서 하는 모임이라 생맥주 한두 잔에 치킨 한두 조각이면 배가 찰 것이기 때문이란다.
저녁 식사를 마치자 아내가 식탁을 치우고 밖으로 나갔다.
집안에는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다.
리모트 컨트롤로 텔레비전을 켰다.
뉴스, 드라마, 골프, 낚시, 스포츠 등등 지상파와 케이블을 넘나들며 이리저리 내 마음대로 채널을 돌려본다.
하지만 재미가 없어서 텔레비전을 껐다.
프로그램에 흥미가 떨어진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그보다 혼자 텔레비전을 보는 것 자체가 재미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널따란 소파에 혼자 앉아있으니 왠지 더 썰렁하다.
온 집안에 적막감마저 드는 것 같다.
자리를 책상 앞으로 옮겨 컴퓨터를 켰다.
이메일도 열어 확인하고, 페이스북도 하고 뉴스도 검색하면서 무료함을 달래 본다.
그런데 인터넷을 하는 동안 현관문 틈새로 간간히 사람들 지나다니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혹시 아내가 아닐까 귀를 쫑긋 세워보지만 기대는 번번이 엇나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집에 들어온 아내가 벽시계를 보고 한마디 한다.
“아직 열두 시가 안 됐네.”
12시에서 분침과 시침 시계 바늘이 겹쳐지기 바로 직전이다.
지금 아들하고 딸이 영국에서 배낭여행 중이다.
자식들에게 핸드폰으로 문자 한 통을 날렸다.
“잘 놀고 있냐!”
그리고 이내 잠자리에 들었다.
자식들 답장은 꿈속에서나마 받아봤으면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띵똥!’
잠결에 문자 메시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딸이 답장을 보냈다.
“완전 잘 놀고 있습니다! 세븐시스터스 절벽 보고 내려와서 뮤지컬 보러 가는 길∼ ㅎ”
그런데 시간을 확인해 보니 헐∼
‘0월 00일 am 1:35’
이제 막 잠이 들었는데 깨고 만 것이다.
그래도 자식들이 여행을 무사히 잘 다니고 있다니 안심이다.
‘연락만 자주 해도 이놈들 걱정은 안 할 텐데...’
어쨌든 딸이 보낸 문자를 보고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것일까.
눈을 감자마자 달콤한 잠에 빠져 들어갔다.
해가 거듭될수록 가족들의 삶이 점점 바빠지는 듯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일을 그만 둘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그때가 되면 날마다 친구들 만나서 밖으로 싸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가족들하고 함께 하는 시간이 없다면 집에 있는 동안 나는 꼼짝없이 외톨이 신세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외톨이로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일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가족과 무언가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아내와 같이 한두 가지 하는 일만 있어도 외톨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어쨌든 이제부터는 가족들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사랑하는 아내 듬직한 아들 예쁜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연습을 말이다.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얄팍한 나의 속셈을 가족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가족과 더불어 살아가는 시간을 서서히 늘려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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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의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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