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쪽 팔려
규칙적으로 몰아치는 너울파도가 흰 포말을 일으키며
사정없이 갯바위를 때리고 밀려간다.
습관적으로 멍석처럼 말리며 뒤돌아서는 물결자락에 밑밥을
서너 주걱 던져 넣으며 먼 수평선을 바라본다.
햇볕은 화창하고 기온도 영상이라 상쾌한데 정도를 넘는 너울 성 파도가
강한 바람과 함께 오늘 극복해야할 최대의 적이다.
어젯밤 늦게 도착해 미리 예약해둔 민박집에서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아침인지 점심인지 구분이 안가는 정오가 다 된 시간에 식사를 하고
해안을 따라 일주도로를 달리다 가끔 파도를 뒤집어써도
안전은 보장되는 주변에서 가장 높은 갯바위에 판을 펼쳤다.
동해안 연안 갯바위 낚시를 경험해 보지 않은 낚시인들은
이곳의 저력을 실감하지 못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부터 벚꽃이 피는 사월까지
포항에서 영덕을 거쳐 울진 임원으로 이어지는 동해안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자주 서는 그런 곳이다.
지금은 접근성까지 좋아 상주에서 영덕 간 고속도로를 이용해도 좋고
주말을 피한다면 속초 양양, 강릉, 정동진을 거치는 코스도 매력이 있고
여유 있는 일정이라면 중앙고속도를 따라 예천, 봉화를 거쳐
불영계곡의 절경을 따라 울진으로 가는 여정이 운치도 있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가족이 여행과 낚시를 겸하는 코스로
적극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어종 또한 다양하다.
주대상어인 감성돔과 벵에돔, 그리고 넉넉한 손맛을 안겨주는
황어와 숭어, 심심풀이 짬 낚시에 앙탈하는 망상어와 학꽁치 등을
낚을 수 있고 선상이나 인공구조물을 설치한 해상낚시공원에서
방어와 부시리 삼치와 벌이는 파이팅.
루어에 무늬오징어도 낚이는 그런 곳이 바로 동해안이다.
올망졸망한 갯바위들이 저게 무슨 포인트일까 싶고
바닥이 훤히 보이는 낮은 수심에 무슨 고기가 낚일까 싶은데
처음엔 반신반의하다가 저력을 알고 나면 흠뻑 빠지는 곳이
바로 동해안 낚시이다.
이곳에서의 낚시는 정해진 틀이 있다.
방파제 데트라포트나 연안의 갯바위이건 간에 동풍이 불고
파도가 적당히 일어야 조과가 좋고 감성돔이나 벵에돔을 대상으로 한다면
오후 늦은 시간부터 밤낚시를 해야 한다.
배를 타고 나갈 일도 없고 차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다
현지인들이 낚싯대를 담그고 있으면 그곳에 채비를 내리면 되니
진입과 철수 또한 언제나 가능하니 편하기도 그만이고
먹 거리 또한 주변의 가까운 곳에 편의점들이 즐비해
식성에 맞춰 선별해 먹을 수 있어 그야말로 전자동 낚시터다.
조수간만의 차가 거의 없어 미세한 조류에 흐르는지
부딪쳐 밀려가는 파도와 바람에 움직이는지 구분도 안 되는 상황에서
환상처럼 약간 잠기던 찌가 순간 훅하니 사라진다.
한 시간이 넘게 여기서 과연 낚시가 될까 내심 말은 안 해도
반신반의하며 습관적으로 캐스팅과 품질을 반복하던 일행의 눈길들이
한 곳으로 꼽힌다.
겨울이면 여수, 완도, 거제 등 감생이를 찾아서 남해안을 하루가 멀다하게
찾아 나서던 일행들의 기대에 찬 시선에 35cm 전후의 동해 첫 감성돔이
지느러미를 곧추세운다.
사실 동해안 낚시를 침을 튀기며 예찬했는데 낚이지 않으면
어쩌나 내심 불안하던 차 휴!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린다.
대개는 숭어나 황어 등 잡어가 낚이다가 꾸준히 밑밥이 들어가면
네 시쯤부터 감성돔이 낚이기 시작해 어두워지면서 씨알도 굵어지고
마릿수도 쏠쏠해지는데 오늘은 첫 입질부터 감성돔이니
대박의 조짐이 보인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규모가 큰 너울파도가 계속 밀려와
익숙하지 않은 지형과 한 번씩 뒤집어쓰는 파도 때문에
낚시하랴 조심하라고 잔소리하랴 주변살피라 바쁘기 그지없다.
첫 입질을 신호탄으로 여기저기 감성돔이 낚이기 시작한다.
일행 4명도 빠듯한 좁은 갯바위에 현지인 두 명도 합세하니
고기를 낚아 갈무리하고 나면 한사람이 뒷전으로 물러나야
그 사이를 비집고 낚싯대를 잽싸게 들이대는 사전에 약속하지 않은
묵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방류 한계치를 갓 벗어난 씨알부터 30 중반의 씨알까지 아직은
4짜급 씨알은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두세 마리씩 손맛을 본 터라
이구동성 동해안 낚시예찬과 함께 기대치는 더해만 간다.
씨알 면에서는 좀 아쉬울지라도 동해안 감성돔 확률은
내 경험에 의하면 다른 지역보다 세배쯤은 높다.
물론 진입과 철수가 자유롭고 낚시시간이 많은 것도 요인이지만
그만큼 포인트가 많고 자원도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최대어를 갱신하고자 하는 대물에 대한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참으로 좋은 곳이다.
그렇다고 큰 고기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확률을 말하는 것이다.
초겨울의 겨울 해는 참으로 짧다.
붉은 노을이 그림자를 짙게 남기니 바람도 잦아들고 너울도 한풀 꺽인다.
그렇다면 지금부터가 최고의 동해안낚시 골든타임이다.
따끈한 커피 한잔씩을 호기롭게 돌리며 오늘의 이 상황을
은근히 자랑도하고 내가 뭐라더냐 동해안이 이렇게
멋진 포인트 아니냐! 일행의 밤낚시 채비를 군 사열하듯
다시 한 번 눈으로 정비하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구명조끼는 절대 벗지 마라.
바위가 미끄러우니 발걸음은 잰걸음으로 움직여라.
캐스팅할 때 옆 사람 조심해라.
조명기구는 꼭 확인해라.
혹 파도에 휩쓸릴지 모르니 낚시가방이나 뜰채는 높은 곳에 놓아라.
동동 떠 있던 찌가 붉은 물감을 풀어 확산되듯
벌겋게 주변을 물들이며 물속으로 스르륵 잠긴다.
휙 하는 파열음과 함께 낚싯줄이 비명을 지른다.
수심 얕은 여 밭을 이리저리 저항하는 녀석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여사이로 파고드는 녀석을 반대편으로 당기는 사이 직 벽 바로아래
튀어나온 돌출부 쩍에 원줄이 감긴다.
일행에게 대를 인계하고 엎드려 줄을 풀기로 하고
허리를 굽히고 원줄을 잡는 순간 지탱하던 오른발이 삐끗.
내 몸은 다이빙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조심하라 잔소리하던 내가 주인공이라니.
절체절명의 순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드는 게 아니라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아! 쪽 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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