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추억-
사람은 고작 다섯인데 12인승 승합차에 터져라 실은
낚시장비 때문에 제대로 앉기도 힘들 정도다.
낚시가방과 의자, 파라솔 보조가방은 기본이요
침낭과 개인텐트에 삼박 사일 간의 먹 거리와
대형 아이스박스 가득 음료 및 부식, 취사도구까지
꼼꼼하기로 소문난 총무가 몇 날을 메모까지 해가며
준비한 것이 가히 이삿짐을 방불할 정도다.
조력이 좀 있거나 자주 먼 거리 출 조를 하던 경험 있는
낚시인들이 아니니 그럴 수도 있겠다하지만
이건 너무 과하게 정도를 지나치게 넘친다.
제 돈 내고 준비한 저들이니 내 간여할 바 아니고
그냥 같이 동행해 가이드 겸 함께하자니 선뜻 응하긴 했지만
이번 낚시가 순탄치 않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든다.
기본 밑반찬 몇 가지와 김치와 쌀, 라면 등 간단히 준비하고
상황에 따라 현지에서 수시로 조달해도 될 자잘한 것까지도
다 짐으로 꾸리니 대형 박스만도 세 개나 되니
출발 전 차에 우겨 넣는 일 자체부터가 반쯤 힘을 빼게 한다,
목적지까지 비좁은 자리에서 엉거주춤 불안하고 힘들게
앉아서 시달릴게 뻔하고 이럴 땐 운전석이 상석이다.
잽싸게 올라타 시동을 거니 속도 모르는 인간들이
같이 동행해주는 것도 고마운데 운전까지 하느냐며
립 서비스를 날린다.
평소 같으면 140여km이니 두 시간 반 이면 충분하겠지만
오늘 같은 주말, 추석을 앞 둔 이 계절에는
벌초 행렬과 맞물려 얼마가 걸릴지 가늠하기도 어려운데
가끔 휴게소에 들려 팔다리를 한 번씩 편다 해도
아마 도착하면 몸살 일보직전일 것이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질 않는다.
안산에서 출발 신갈에서 경부고속도로로 합류하기까지
두 시간을 허비하더니 여전히 거북이 걸음이다.
내 고향 논산의 논산지 까지는 근 다섯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도착 할 수 있었다.
애초의 목적은 논산지 상류 대둔산에서 발원해
양촌을 지나 흐르는 호남고속도로 및 치마바위였으나
가뭄으로 물이 말라 무릎밖에 나오지 않는 수심으로
바로 논산지로 장소를 변경하고 저수지를 돌아보니
저수지 상황 또한 배동바지 배수로 인해 연안 포인트는
낚시가 불가능해 좌대낚시를 하려니 이 또한 주말이라
여의치가 않다.
엉거주춤 서로눈치를 보며 결론을 못 내리고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데 나 또한 특별한 비책이 있는 것도 아니니
난감하기 그지없는데 궁하면 통한다고 막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낚시인이 구세주로 등장한다.
일행 중 한사람이 사정이 생겨 예약한 좌대를 취소한단다.
두 세 명이 앉으면 딱 맞을 좌대에 두 명분 웃돈을 지불하고
네 번을 팔이 빠져라 노를 저어 왕복하며
일행과 낚시장비를 준비한 좌대로 옮기고 나니
해는 서산에 턱을 받치고 있다.
좌대란 것이 드럼통 위에 얼기설기 널빤지를 깔고
두 귀퉁이는 연안의 나무에 밧줄로 잡아매고 나머지 두 귀퉁이는
쇠 닷을 내려 바닥에 고정 시켜 놓았으니
의자에 앉아 몸만 조금만 틀어도 좌우로 좌대 전체가
늘씬한 아가씨 웨이브하듯 요동을 치니 좌대 한번 가관이다.
수도파이프를 사각으로 세워 퍼런 천막을 뒤집어 씌워놓고
한쪽 면에 지퍼 하나 달랑 달아놓은 것이 삼박사일의
요란스런 일행의 낚시여정의 유일한 휴식 공간이다.
낚시란 참 묘하고 모든 불편을 감내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간간이 수면으로 튀어 오르는 황금빛 붕어에
짐 갈무리는 나 몰라라 각자 자리를 잡고 낚싯대 설치에
몰입해 있는데 네 명이 한 면씩 차고앉으니 정작 난
낚싯대 설치할 공간이 없다.
어둠은 내려앉는데 바리바리 싸 온 먹 거리는 팽개치고
낚싯대 설치하랴, 찌 맞추랴, 수심 체크하고 떡밥 준비하랴
정신들 없으니 정작 저희들 말로 모시고 온 나는
꼼짝없는 오늘의 쉐프다.
그래 이제 갓 낚시에 빠진 당신들의 심정을 내 안다.
오늘은 내가 봉사한다. 저녁은 가볍게 라면으로 하자.
버너에 불을 붙이고 코펠을 얹어 물을 부으려니
아뿔사! 물이 없다.
개요란만 떨었지 정작 생존 일순위인 물을 빠트린
저 얼치기 낚시인들을 어찌 할꼬.
오늘 궁하면 통하는 법칙이 또 한 번 되풀이 된다.
끓이는데 어떠랴 군대에서 훈련 받을 때 철모로
논물도 떠 마셨는데 저수지 물로 그냥 끓이자.
보글보글 끓인 라면을 앞에 놓고 시큼한 김장김치를
포기 채 머리만 잘라 올려놓으니 허기진 인간들이
허겁지겁 시장기를 메운다.
마지막 남은 국물까지도 라면은 역시 국물이라며
제 그릇에 따라붙던 S가 갑자기 하던 동작을 멈추더니
눈을 희 뜨며 정색한 얼굴로 질문을 한다.
“아까 보니까 물이 없던데 어디서 조달했데?”
“응 안 챙겨서 그냥 저수로 물로 끓였지”
“으웩! 난 안 먹어”
다 먹고 남은 국물까지 마시겠다던 인간이 웬 시추에이션.
도착하자마자 천막 뒤편에서 가장 먼저 낚싯대를 편성하던
이 친구, 엉덩이 까고 좌대 뒤편에서 볼 일 본 것을
내 진즉 알았으면 어찌 그 물로 라면을 끓였겠나!
둥둥 떠다니니 누가 볼세라 뜰채로 슬슬 좌대 밑으로
밀어 넣지만 않았어도 똥물라면을 먹었겠는가!
추석을 앞 둔 따가운 햇살이 쏟아지던 날,
어머님 산소 벌초를 마치고
내마음속 낚시의 고향, 논산지를 찾았다.
시원스레 뚫린 일주도로를 따라 앵두나무집 좌대에 이르니
아련한 옛 추억과 함께 유난히 깔끔을 떨면서
엉덩이를 아무데나 까 특식(?)을 제공한 그 친구가 불현듯 떠오른다.
직업이 비계공이라 늘 허공에서 작업하며 아슬아슬 곡예 하듯
사는 인생을 이제는 끝내고 낚시나 실컷 하고 싶다던 그는
다음해 가을에는 함께 할 수 없었다.
평생을 함께한 삶의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 한 것이다.
강산이 두 번 변해도 논산지는 그대로인데
그는 가고 추억만 남았다.
재미있고 웃기는 이야기보다 가슴 아프고 시린 추억들은
왜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우리를 슬프게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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