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프닝도 낚시다.
한탄강변을 달려 왼쪽으로 보이는 저수지 제방 옆길을
따라 오르니 시원한 계곡바람이 차창으로 밀려들며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긴다.
길이를 알 수 없는 계곡이 멀리 가물가물 보이는 산봉우리까지
푸르른 원시림으로 온 몸을 감싸고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맑디맑은 계곡수와 울창한 산림만으로도 일행의 환호성이
끊이지 않으니 오늘의 장소 선택은 신의 한수이다.
평소 관리형 낚시터보다는 노지만 다니는 친구들이라
여덟 명의 낚시 짐이 이삿짐을 방불케 한다.
각자의 낚시가방과 의자, 받침틀, 보조가방, 파라솔에
일교차가 큰 계곡지를 염두에 두고 개인 낚시텐트까지
버거울 정도로 많은데 거기에 공동의 먹 거리까지
들고 지고 나르는 것부터가 하나의 일거리다.
골 자리마다 자리 잡은 수상 방가로는 이미 하룻밤 경관 좋은 곳에서
즐기려는 사람들로 꽉 차있다.
여성들과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재잘거리는 소리로 보아
가족이나 친지들이 함께 동행 해 찾아온 사람들이다.
한때는 팬션이 유행처럼 성시를 이루다 근래 들어 사양화 되는 것은
먹고 즐기고 하룻밤을 보내는 것 외에는 즐길 거리가 충족되지 않아
별도 정보검색하고 이동해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낚시터에 편의시설과 불편함이 없는 조건이
충족되니 가족 중심 낚시터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냉난방은 기본에 널찍한 거실, 침실이 두 개에 주방과 욕실까지
고급 모텔수준의 낚시터가 현실이니 사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새로운 낚시문화가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제방에서 불던 바람이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으며
계곡에서 부는 대륙풍으로 바뀌니 굽고 지지고 먹고 마시며
한바탕 난장을 치루 던 일행들도 각자 자리에 앉아
찌 불을 밝히고 낚시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물 좋고 정자 좋고 반석 좋은 곳 없다는데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라며 이구동성 흥겨운 소리들을 한다.
오늘은 모두가 맞아 떨어지는 날이다.
경치 좋고 물 좋고 시설까지 좋으니 조황이 안 좋을 거라
은근히 걱정했는데 몇 번의 집어에 노란 뼘치 급 붕어들이
미끼를 물고 늘어진다.
어종도 참으로 다양하다.
초저녁 심심찮게 붕어와 모레무지가 찌를 올리더니
간간히 떡붕어와 월척이 될까 말까한 당찬 붕어까지 가세하니
커져가는 기대감에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는데
건너편 두 좌대간의 설전이 분위기를 망친다.
한 팀은 유치원생쯤 되는 여자와 남자 아이를 각각 동반한
젊은 부부 두 가족으로 보이고 한쪽은 아들, 며느리와 초등학생과
중학생 손주들과 함께한 나이 지긋한 부부로 보아
삼대가 함께한 가족들인데 조황이 좋으니 아이들이 낚싯대를 움켜지고
늦은 밤까지 난리블루스를 춘 것이 원인이었다.
서로 마주보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으니 은근히 경쟁심도 작용했는지
낚을 때마다 여자들이나 아이들이 과도한 리액션이 신경을
자극하기도 했겠지만 그 정도에서 끝나지 못하고 불빛 하나로
종래는 육두문자로 발전하는 아이들 앞에서 보여주면 안 되는
추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대개 밤이 깊어지면 아이들은 TV를 보거나 준비한 간식 등
주전부리를 즐기면서 안으로 들어가는데 생전 처음 잡아 본
낚싯대에 물고기가 물고 늘어지니 잠자는 것은 이미 안중에 없고
신바람이 난 것이다.
삼대가 함께한 가족의 중학생이 향어를 걸어 가족의 채비 전체를
휘감으니 흡사 서치 같은 불빛을 켜고 향어를 끌어낸다. 채비를
정리 한다 초보자들의 의례적인 해프닝이 사건으로 발전 한 것이다.
젊은 부부의 “어이 불 좀 꺼” 반 말투의 말에 “너 몇 살이야”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슬슬 본질은 어디가고 말꼬리 잡기가 시작된다.
본래 불구경 싸움구경은 할 만하다 하지만 이쯤에서 중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싶어 슬그머니 어쩌지 못하는 오지랖을 펼친다.
“두 좌대에 계신 분들, 서로 좀 이해하고 진정들 하시지요.”
“아이들도 있는데 좀 그렇네요.”
설전을 주고받으면서도 옆 좌대의 충고 한마디에 무언가 끄나풀을
잡고 싶었는지 잽싼 답이 돌아온다.
“혹시 낚시방송 이 팀장님 아니세요?”
“그 놈의 향어가 낚시친구들을 싸움을 붙이네요.”
됐다 이 해프닝은 여기서 끝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한민족답게 이들도 체면을 유지할 명분만 주면
다정한 낚시친구요 살 겨운 동료다.
이 후 대화는 뻔하다.
“아유 어르신 죄송합니다.”
“애들이 초보라 어쩔 줄 몰라 불비추고 소란 피워 미안하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보이지 않아도 입가에 미소를 알 수 있다.
숨죽이며 추이를 지켜보던 동료들이 한마디씩 거들고 나선다.
몇 십 년 낚시를 취미로 했던 조력 있는 낚시인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거나 낯 뜨거웠던 기억들이 오늘밤 우리 일행의 화두가 되었다.
올라오는 찌도 심드렁해지고 추억에 취해 시간도 자정이 지나
출출한 참에 라면 끓이고 소주잔 기울이며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는 추억 여행이 시작된다.
자신이 한 행동이면서도 남이 한 것처럼 온갖 꼴불견을 각색해
얘기하고 낚시터 밥집 처자에 마음 두고 생쥐 풀 방구리 드나들 듯
시간만 나면 기웃거리던 젊은 날을 회상하듯 되새기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낚시의 과거를 반추한다.
옆 좌대의 사소한 해프닝이 우리에겐 소중한 추억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성숙되어가는 낚시문화와 가족 중심의 레저로의
변화에 새로운 희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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