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로 사는 법-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에 시린 손을 비비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훅하는 열기와 자욱한 연기가 순간 시야를 가린다.
연탄화덕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앉아 굽고 마시고
빈자리가 없이 9개의 원형 테이블이 모두 만석이다.
이제 어쩌지 하는 표정으로 일행의 시선은 모두 나에게 고정된다.
우리 일행 중 나이가 제일 많은 선배가 되다보니 해거름에
낚싯대를 걷고 허기진 배를 어디서 채울까 설왕설래 하는 일행을
무조건 따라오라 인솔자가 되어 저녁 한 끼 먹자고
먼 길을 돌아 왔는데 이게 무슨 낭패란 말인가!
가까운 곳에서 순댓국이나 한 그릇하고 숙소에 가서 편하게 편의점
다양한 안주와 시원한 맥주로 입가심하고 내일 새벽 갯바위에 나가자는걸
잠자는 것은 죽는 연습인데 무슨 연습을 일삼아하느냐
죽으면 영원히 잠드니 永眠하라고 하지 않느냐
긴긴밤 수놈들끼리 무얼 할 거냐며 몰아세워 끌고 나왔는데
남의살 한 점 구워 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사 塞翁之馬에 궁하면 통한다고 죽으란 법은 없다.
내 평생 낚시인으로 살아온 보람을 오늘 또 맛본다.
두 명이 앉아 빈소주병 셋에 맥주병이 다섯, 꼭지가 돌성싶은 양인데
게슴츠레 처다 보던 벙거지를 눌러쓴 양반이 반색을 한다.
“아니! 이게 누구요? 이 팀장 아닙니까?”
염병 삼십년 전 팀장이 아직도 팀장이다.
어느 유명한 낚시인의 팬 카페 모임에 축하차 참석한 적이 있는데
회원 중 하나가 우리 카페의 주인공은 선생님으로 불리고
명인으로 칭송받는데 이 팀장님은 언제까지 팀장이세요?
딴지를 겸한 비아냥조의 말에 웃음으로 슬쩍 넘기고 말았다.
사실 난 팀장이라는 호칭이 가장 좋고 정겹다.
부끄럽고 겸언쩍지만 명인이라는 타이틀과 인증패를
세계스포츠 피싱협회에서 몇 명에게만 수여했고
그중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받았고 명예보다는 어깨를 짓누르는
큰 부담으로 항상 가슴에 남아있고 낚시 계에 큰 빚을 진
기분으로 살고 있다.
“팀장님 합석 하시죠, 우린 파장이라 마지막 잔만 비우고 일어 날거요”
네 명이 끼어 앉으니 어깨가 맞닿지만 안주가 멀어서 그렇지
한 발짝 의자를 뒤로 밀어 앉으니 그런대로 분위기도 살아나고
쪽수도 많아 패싸움이 붙어도 든든한 형국이 되었다.
늦은 저녁에 가뜩이나 출출한 판이니 시장이 반찬이라고
맛있는 반찬은 이미 마음속에 챙겨왔으니 석쇠위에 올라온
고기가 소리만 지르지 않으면 목구멍으로 넘기기 바쁘다.
주거니 받거니 잔이 오가며 일어선다던 인간들도 누가 낚시인 아니랄까
엉덩이를 의자에 강력본드로 붙여 버렸다.
이쯤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되는데 마음속으로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그들의 낚시이야기를 멈출 용기는 도저히 나지 않는다.
나 역시 낚시이야기만 나오면 침을 튀기며 무용담을 자랑하고
밤새워 뻔한 결과를 짐작하면서도 그 속에 빠져들어
대리만족을 느끼던 지난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술 취한 여섯 명의 낚시인, 아니 난 술을 하지 않으니
한명 빼고 다섯, 얘기 한번 하려면 순서를 기다릴 판인데
어디 그게 가능한 일인가!
주변의 시선이 따가울 정도의 열변이 점점 강도를 더해간다.
갯바위낚시 4대 원도권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진도, 완도, 여수,
통영, 거제를 거쳐 부산에서 포항, 울진 동해를 따라 오르다
인천에서 시작해 서산, 태안을 지나 대천 군산으로 거침없이
내달리다 목포에 이르니 압해도 섬붕어가 주제가 되어
또 다시 전국을 일주하려 한다.
하나, 둘 빈자리가 늘어나는 실내에 흘끔흘끔 눈치를 살피는
주인장과 직원들의 표정을 보니 이제 그만 끝내달라는
무언의 암시이다.
년 식 으로도 내가 제일 연장자요 이곳으로 안내한 것도
나인지라 계산은 당연 내 몫이고 하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예상했던 금액을 훨씬 넘을 것 같아 걱정인 판에 합석한 두 명의
낚시친구들 것만 빼고 계산하기도 그렇고 그래 이참에 내가
한턱 쏘자 마음먹고 계산대에 다가가니 주인이 먼저
말을 건넨다.
“계산 했는데요”
벙거지 모자의 주인공이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계산을
마친 것이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잠시라도 망설임과 주저마음을 가졌던 내가 부끄러운 것이다.
선배로 사는 법, 그게 무엇일까?
누구나 언젠가 선배가 된다.
나이는 당연한 것이고 어느 전문 기능적인 분야는 먼저 입문해
결과를 이뤄진 사람이 나이에 관계없이 선배가 되기도 한다.
어떤 선배이건 선배로 살기는 쉽지 않다.
곰곰 생각하니 대가 네 가지로 요약되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주머니는 열고 입은 닫아라.
최소한 후배들을 만나면 차 한 잔 대접 하고 식사 한 끼쯤은
같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력은 갖고 있어야 하고
쓸데없는 잔소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 눈높이를 낮추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자.
의욕이나 열정은 있지만 체력적인 한계는 극복하기 힘들다.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면 된다.
세 번째, 숨 가쁘게 변하는 세상을 인정하자.
그 변화를 인정하고 그것을 주도하는 신세대의 조력자가 되자.
마지막 네 번째는 어떠한 경우이던 왕년의 나를 거론하지 마라.
입으로 화를 자초하고 자신이 만든 우물에 갇이는 우를 범하지 말자.
왕따 당하지 않고 후배들과 영원히 함께하고픈 바램에
오늘은 깊은 생각에 잠겨 선배로서 사는 고민을 한다.
溪流 이 갑철
|
|
* 가끔 광고를 클릭해 봐 주시면 낚랑 사이트 운영에 도움이 됩니다 ^^
|
|
|
알림
마이웨이 낚시이야기
;)
;){kind=sma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