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추억여행-
한적한 일요일 오전답게 식당 안은 적막감이 흐른다.
대둔산 계곡을 향해 논산지로 흘러드는 하천을 따라 올라가면
길옆의 가든 형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예약이 되어있지 않으면 당일 단체가
자리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계곡인데 비수기인
겨울철이기도 하지만 경기가 좋지 않으니 아예 인건비라도 아끼자고
문을 닫아걸고 봄을 기다리는 경우가 더 많다.
최상류에 충청도와 전라도 대전광역시의 경계가 되고 있는 남한의 소금강이라는
아름다운 명산이 있어 사계절 찾아드는 산악회회원들이라도
이삭 줍듯 한 팀 씩 받을 수 있으련만 팬션이나 식당이나 약속이나 한 듯
인기척이 없다.
우리가 오늘 예약한 곳은 고향 초등학교 후배가 운영하는 곳으로
사전에 동창회 모임을 알리고 장소를 정한 것이다.
오전 11시, 약속시간에 늦지 않으려 새벽같이 집을 나서니 채 열시도
안 돼 도착한 것이다.
학교 옆에 있는 놈이 지각하고 멀리 있는 놈이 제일 빨리 온다는
옛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허긴 멀리 있는 놈은 차편이 많지 않은 그 시절에 첫차를 타지 않으면
도저히 등교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었을 터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인데
학교 담장 옆에 있는 녀석은 조금만조금만 무춤거리다 꼭 지각을
하는 것이다.
얼어버린 계곡물 사이로 졸졸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타임머신을 타고
60년대로 돌아가 깊은 추억 속으로 빠져 든다.
배고프고 힘들었던 시절, 어린아이라도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으면
하루 두 끼도 어려웠던 그 시절이 그리운 건 왜일까?
지금 생각하면 지겨울 정도로 싫었던 그 시절의 먹 거리가 이제는
웰빙이나 건강식으로 바뀐걸 보면서 우리가 선구자적 역할을 했구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독한 산골마을이라 거의가 비탈진 야산을 개간한 밭이고 거기에서
나오는 곡물은 뻔 한 것들이었다.
고구마와 옥수수 감자가 주인공이고 보리가 끼어드는 것이
소출의 대부분이었다.
의례히 아침은 보리와 감자가 주 식재료이고 점심은 언감생심 생각조차 없었고
저녁은 지금은 새 먹이로 각광받는 조밥에 감자나 고구마가 절대 우위를 차지하는
일 년 열두 달 똑 같은 밥상이었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에 집집마다 아이들은 왜 그리 많았는지 적어야 다섯이고
칠, 팔남매는 예사였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아이를 낳아 고모와 조카가 한 학년이 되어 동창이
되는 경우나 삼촌과 조카가 학교에서 친구로 치고받는 경우도 있다.
나 역시 그 놈의 촌수 때문에 부지깽이로 죽도록 맞은 적이 있다.
항렬이 낮아 나에게 아저씨뻘인 친구와 한반이 되었는데
이 친구가 운동이라면 팔방미인이라 다른 건 다 어떻게 해보겠는데
달리기나 씨름, 핸드볼 등 신체적 핸디캡은 극복하기가 힘들었다.
요즘 소위 말하는 일진에 짱이 되려면 그를 굴복시켜야 되는데
정당한 경쟁으로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오기와 근성하나로 무작정 대들다 종래는 한판 붙자가 되고
오 부자 집 자운영을 심어 놓은 논에서 한판의 격투기 경기가
열리게 되었다.
신체적 우열을 떠나 상대와 싸울 때 기 싸움에 지면 그 결과는
뻔 한 것이다.
불을 뿜듯 전의를 불태우며 마주서 노려보는 순간 난 이미 결과를 예측하고
있었다.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리는 친구, 아니 아저씨를 포옹하듯
껴안으면서 내 머리가 으스러져라 들이받은 헤딩에 둘이 나자빠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려 도리질을 하고 일어서보니 안면에 유혈이 낭자하고
구경하든 친구들은 입을 벌린 채 피투성이 친구를 바라보고만 있다.
어둠이 내리는 저녁, 동네에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뜩이나
배도 고픈데 저녁은커녕 종아리가 피가 맺히도록 회초리를 맞았다.
허지만 어린 마음에 그를 굴복시켰다는 자부심과
그 이후 내 앞에선 눈을 바라보지 못하는 주눅 든 모습에
내심 쾌재를 불렀으니 참으로 나는 못난 인간이었다.
“어이! 벌써 왔어? 빨리도 왔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아저씨이자 총무를 맡고 있는
친구가 승합차에서 내리는데 우르르 한 떼의 동창들이 몰려온다.
학 년당 두 학급에 한반이 60여 명씩이니 100명이 넘는 동창 중에
모임에는 늘 5~60명씩 나오는데 오늘도 예상 인원은 같은 숫자이다
어느 날 매번 보이다가 연락도 없이 한 친구가 안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하나둘 사고나 질병으로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난 친구도 있지만
그것은 사전 연락으로 알게 되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는 다는 건
불행한 가정 사나 경제적인 이유가 꼭 있다.
안타깝고 가슴 아프지만 그런 친구에게 찾아가 위로가 되는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함이 우릴 더욱 아프게 한다.
대전에서 서울에서 한대 두 대 차량들이 몰려들고 예상 인원이
거의 다 모여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상마다 올라 있는 그것은
먹음직스런 생선회다.
빛깔을 보니 계곡 수 에 있던 송어가 분명한데 아저씨 동창이
한마디 한다.
“오늘 이 생선은 나에겐 조카, 친구들에겐 동창인 낚시계스타
갑철이가 알래스카에서 잡아 공수 해온 것인게 한 점도 남기지 말게“
“남기는 친구는 입 째 버릴껴”
“아저씨 잡수라고 생선을 어찌나 많이 보내는지 지겨워 죽겠어”
평소에 시침 뚝 떼고 유머와 위트가 넘쳐난 친구인데
그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멍하니 입만 처다 보는 동창들에게 아저씨의 열변은 끝이 없다.
모두다 농담이려니 하면서도 나를 끼워 넣으니 농인가 진담인가
어리둥절한 표정들이다.
“그리고 갑철이 조카하고 둘이서 밤낚시를 하는데 기네스북에
올라갈 기록어를 잡았다 둘이 욕심 부리다 떨구고 말았어!“
이쯤에선 모두가 얼마나 크길래? 하는 표정들이다.
“갑철이 조카는 논산지 건너편에서 하고 나는 이쪽에서 하는데
둘이 똑 같이 입질을 받아 챔질을 했는데 밤새 씨름하다
놓치고 말았다니께“
“알고 보니 한 마리를 나는 꼬리를 잡고 조카는 입을 잡고
서로 땡기다 둘다 지쳤다니께“
동창들이 포복절도 하는 사이 그 옛날 내가 그에게 헤딩으로
한방 날리듯 마지막 한방이 날아온다.
“어ㅣ 갑철이 조카! 고기 좀 그만 보내, 너무 많아 썩어서
온 동네 냄새 난다고 난리여“
溪流 이갑철
|
|
* 가끔 광고를 클릭해 봐 주시면 낚랑 사이트 운영에 도움이 됩니다 ^^
|
|
|
알림
마이웨이 낚시이야기
;)
